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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추천/한비자(韓非子)

한비자(韓非子) - 제1편 난언(難言)

사회생활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윗사람과의 관계(물론 부하직원도 중요하지만)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또 내 의견을 윗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해서 내 실력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좋은 평가를 받아내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으리라.

 

 

개인적으로 『한비자』에서 가장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제1편 '난언(難言)'이다.

가장 처음 나오는 내용이라 각인효과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언'이라는 말은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라'는 뜻으로, 주로 신하가 군주에게 의견을 제시할 때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현 시대에 적용을 해보자면 상사에게 내 의견을 말할 때의 어려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비단 상사를 대할 때뿐 아니라 '나는 부하직원에게 어떤 상사인가? 부하직원은 나에게 의견을 제시할 때 어떤 심정일까?'를 반성해보는 데에도 크게 요긴한 내용이 되겠다.

 

난언 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신(臣) 한비는 말하는 그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의 말이 주상(主上)의 뜻을 좇아 유창하고 조리 있게 줄줄 이어지면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공경스럽고 삼감이 깊으며 강직하고 신중하면, 서투르고 순서가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말이 많고 번번이 다른 사물을 거론해 비슷한 것을 열거하고 다른 사물에 비유한다면, 그 내용은 공허하고 쓸모가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세밀한 부분만을 꼬집어 요지를 설명하며 간략히 말하고 수식을 덧붙이지 않으면, 미련하고 말재주가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주상의 측근에 있는 자를 비판하며 다른 사람의 속마음까지 살펴 알려고 한다면, 남을 비방하며 겸손을 모른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말하는 뜻이 넓고 크며 오묘하고도 깊어서 헤아릴 수 없으면, 과장되어 쓸모가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자기 집안의 이익을 계산해 세세하게 얘기하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면, 소견이 좁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또한 속된 말솜씨로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말만을 가려서 하면, 목숨을 부지하려고 주상께 아첨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세속과 동떨어져 괴이하고 허무맹랑한 사실들만을 늘어놓으면, 엉터리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민첩하고 말재주가 뛰어나며 문채(文采)가 번다하면, 사관(史官) 나부랭이로 여길 것입니다. 일부러 문학적인 것을 버리고 사물의 바탕 그대로만을 말하면 천하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수시로 『시경』이나 『서경』 같은 경전에 있는 말을 인용하고 고대 성왕의 법도를 본보기로 삼으면, 옛 사실들만 들먹인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이것이 신 한비가 말하기를 꺼리며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어떤가? 한비가 너무 생각이 많고 속이 좁은 것일까? 한비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할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구실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다.

 

위와 같이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지 않아도 상사는 내 의견에 이렇게 토를 달며 면박을 줄 수 있다.

 

 

"말이 너무 많아. 수치가 없이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이야. 아니, 이번엔 무슨 숫자만 잔뜩 넣었어? 한눈에 보기 좋게 표나 그래프로 정리를 해야지. 뭐야~? 지금 무슨 그림책 만들기 시간이야? 그림만 잔뜩 집어넣을 게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제시나 대책이 나와야지. 내가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 돼? 그러면 내가 자네 부하직원이지 상사인가?"

 

어떤가? 보기만 해도 고구마를 몇 십개씩 먹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래서 상사에게 내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내 입장에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사의 성향에 맞추어 의견 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그래프를 좋아하면 그래프를, 뭐든지 정량화 해서 보여주기를 바라면 수치와 근거자료를 풍부하게, 이렇듯 상대방 입장에서 고려를 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상사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만 고집하기보다 부하직원이 어떤 계산 속에서 의견을 제시하는지 경청해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면 남의 말만 듣고 한비와 같은 불세출의 인재를 죽여버린 진시황과 같은 입장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