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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추천/한비자(韓非子)

한비자(韓非子) - 제2편 애신(愛臣)

정말 명대사다. - 영화 '부당거래' 中 -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내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잘 해준 사람에게 배신 당하거나 배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으로 인해 되려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경고하는 말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한비도 임금과 신하 관계에서 임금이 신하를 아무리 총애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신하들 중에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있겠지만 마치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알아서 척척 일을 잘해주는 훌륭한 신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임금의 마음은 그 훌륭한 신하에게 기울게 되고, 아무래도 다른 신하들보다 더 자주 대화하고, 일도 맡기고, 권한도 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임금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는데 사람들이 감히 우러러보기도 어려운 임금을 상대하기보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에게 잘 보여서 자기 이득을 얻으려 하면서 당파가 생기고, 법이 문란해져 결국 임금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아무런 악의를 품지 않고 있어도 자연스레 이러한 부작용이 생길 것인데 만약 그 신하가 악의를 품게 된다면 어떨까? 심한 경우 모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비는 이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라면 제아무리 아끼는 신하일지라도 그 분수에 맞는 봉록과 권한만을 갖게 해서 사악한 마음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애신'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총애하는 신하를 지나치게 가까이하면 반드시 그 군주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며, 대신을 너무 귀하게 대우하면 반드시 군주의 자리를 갈아치우려 할 것입니다. (중략) 장군이나 재상 같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군주가 할 일을 대신하며 자신의 가세를 키우는 자를 군주는 밖으로 내치십시오."

 

이는 비단 임금과 신하 관계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 상하관계가 있는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상하질서가 확실하고 상명하복의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보수적 조직이라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장님이 아주 성격이 까탈스럽고, 꼼꼼하며 작은 실수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부서는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일 것이다. 그런데 그 부장님이 유독 A 대리에게는 칭찬을 자주 하고, 밖에서 따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중요한 일도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A 대리를 질시하여 거리를 두는 사람도 많겠지만 A 대리를 지렛대로 삼아 부장에게 어필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승진을 앞두고 부장님의 좋은 인사평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경우 A 대리는 공식적 직책은 대리이지만 과장급 이상의, 아니 어쩌면 부장보다 더 막강한 권세를 부리게 될 수도 있다. 부장의 입장에서는 길게 보면 경쟁자를 키우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하직원을 다스려야 할까?

한비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러므로 신하된 자가 조정에서 국정을 행할 때 사적으로 조회를 열 수 없도록 하고, 군사를 담당하고 있는 장수는 사적으로 교분을 맺을 수 없도록 하며, 국고를 책임지고 있는 신하는 사사로이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군주가 신하의 횡포를 막는 방법입니다."

 

현대 사회에 적용해보자면 부하직원이 자신의 권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중요한 일에 대해 부하직원에게 전결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내 할 일은 부하직원이 알아서 척척하면 당장 내 몸은 편해서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내 자리는 부하직원의 자리로 대체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특정 부하직원과 특별한 교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면 안 된다. 그래야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결국 내가 속한 그룹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특히 상하질서가 확고한 보수적 조직이라면) 그만큼 더 외로운 자리에 앉게 될 것을 감수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