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상사는 어떤 상사일까?
'무섭다'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속을 알 수 없는 상사가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비위를 맞춰야할지 난감하여 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한비도 군주의 도리인 주도(主道) - 술 마실 때 그 '주도(酒道)'가 아니다 - 에 대해 논하면서 군주가 스스로의 능력과 상관없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신하들이 군주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게 돼 자신들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며, 군주가 이를 바탕으로 신하를 부리면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비자 주도(主道) 편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군주는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는다.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내보이면, 신하는 그 의도에 따라 잘 보이려고 스스로를 꾸밀 것이다. 군주는 자신의 속뜻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그 속마음을 보이면, 신하는 남과 다른 의견을 표시하려고 할 것이다.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신하는 즉시 본심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지략이나 지혜를 감추면 신하들은 스스로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노자의 '무위(無爲 : 하지 않음)'와 '허정(虛靜 : 비고 고요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군주가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유지함으로써 신하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군주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신하들이 일하도록 만들어 실정에 맞게 일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비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리하여 군주는 지혜가 있다 해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알게 하고, 현명함이 있다 해도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신하들의 행동의 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용기가 있어도 분노하지 말고 신하들이 용맹함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지혜를 사용하지 않아도 총명함을 갖게 되고, 현명함을 사용하지 않아도 공을 얻게 되며, 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강함을 갖게 된다. 신하들은 저마다의 소임에 충실하게 하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일정한 법규를 지키게 하여 신하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리는 것을 '영원불변의 도[常道]'라고 한다."
이런 상사, 얼마나 무서운가? 내가 이런 상사가 된다면, 부하직원을 완벽히 통솔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비는 이 군주의 도리를 방비하기 위해서 다음의 다섯가지 위협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 → 군주가 지위를 잃게 됨
2) 신하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하는 것 → 군주가 은덕을 베풀 수 없게 됨
3) 신하가 군주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 → 군주가 행정의 통제력을 잃게 됨
4) 신하가 제멋대로 백성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 → 백성들이 군주가 아닌 신하를 섬기게 됨
5) 신하가 개인적으로 패거리를 모으는 것 → 군주는 자신을 편들 무리를 잃게 됨
이러한 내용들은 수평적 조직을 강조하는 현대의 흐름 속에 다소 맞지 않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대다수의 사회 조직들이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특히 유교적 문화가 강하게 뿌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요긴한 조언들이다.
내가 상사로서 부하직원들을 잡음없이 통솔하고 일하게 하고 싶으면 위 조언들을 참고하여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부하직원이라면 위 다섯가지 위협을 내가 실행하여 상사가 힘을 잃게 하고 내가 실권을 가지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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